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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삼성의 베트남 투자와 일자리 문제

비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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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타고 50분 남짓 달리면 중소도시 박닌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1960~1970년대 우리나라 풍경을 빼닮은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이 세계인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5년 전 삼성전자 휴대전화 공장이 들어서면서다. 21만평 규모의 이 공장은 세계적으로 드물게 부품과 완제품 생산이 한 곳에서 이뤄지는 특이한 구조다. 35도를 오르내리는 베트남 특유의 폭염 속에서도 휴대전화 생산라인은 하루종일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휴대전화는 연간 1억2000만대 수준. 삼성이 갖고 있는 세계 8개 휴대전화 공장 중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는 이 공장으로 모자라 인근 옌빈공단에 제2의 휴대전화 공장을 최근 완공했다. 둘을 합치면 삼성이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휴대전화의 40%를 책임지게 된다.


삼성의 베트남 투자는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삼성전자는 베트남 남부도시인 호찌민에 10억달러를 투자해 복합 가전공장을 2017년 완공할 계획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박닌 공장에 10억달러를 들여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생산시설을 짓기로 했다. 삼성전기도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 12억달러를 투자했다. 한때 중국에 집중했던 삼성의 해외투자가 대거 베트남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삼성 내부에서조차 베트남 ‘올인작전’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베트남이 신규 투자처로 각광받는 이유는 값싼 인건비와 풍부한 노동력, 베트남 정부의 지원이 맞물린 결과다. 휴대전화 공장의 경우 1인당 급여는 월 300달러로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인건비가 싼 중국과 비교해도 절반에 불과하다. 1억명에 육박하는 인구에다 평균 연령이 우리보다 12살이나 젊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한국 기업이 겪고 있는 구인난은 이곳에서는 남의 나라 얘기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한 베트남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도 눈길을 끈다. 삼성 관계자는 “최초 4년은 법인세 면제에다 이후 12년은 5%의 최소 세율을 적용받는다”며 “베트남 진출로 연간 7000억원의 비용을 줄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생산기지 해외 이전에 따른 산업공동화 현상이다. 2009년 베트남 공장 가동 이후 삼성이 휴대전화 사업에서 채용한 현지인력만 5만2000여명이다. 삼성전자의 국내 총 고용인력(10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다. 1~2차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10만명을 웃돈다. 당장 휴대전화 산업의 메카인 구미공단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때 연 1억대에 육박했던 휴대전화 생산량은 지난해 3분의 1로 줄었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해외 투자는 그동안 관세 장벽을 피하기 위한 현지생산-현지판매 개념이 주였다. 그러나 삼성의 베트남 투자는 차원이 다르다.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 사업장의 핵심 생산라인을 옮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내 고용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더구나 LG를 비롯한 다른 대기업들도 앞다퉈 베트남 진출에 나서면서 산업공동화 현상은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됐다.

 

눈을 돌려 다른 나라 사정을 돌아보자. 미국은 요즘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기업의 국내 귀환) 효과로 떠들썩하다.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 세계 각지로 떠났던 기업들이 속속 유턴하면서 제조업이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포드·GE를 비롯한 100여개 기업이 국내로 돌아와 180만개의 일자리가 늘었다고 한다. 중국은 인건비가 급등한 반면 미국에서는 셰일가스 혁명으로 에너지 가격이 떨어져 투자여건이 역전된 까닭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유치 노력도 한몫을 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삼성은 어떨까. 혹 짐 보따리를 싼 뒤 국내로 유턴할 의향이 있는지 궁금했다. 베트남 현지법인 고위 관계자는 “국내로 돌아갈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인건비가 아니라 ‘살기 위해’ 베트남에 왔다”고 했다. 이어 “구미공장은 1년에 1000~2000명 뽑기도 어렵지만 베트남은 1주일이면 해결된다”면서 “실업계고를 나와도 호텔 서빙을 하지 누가 공장에서 일하려 하느냐”고 덧붙였다.

 

정부는 일자리 확충을 위한 기업 투자에 목을 매고 있다. 돈을 쌓아둔 채 투자를 게을리한 기업에는 세금을 물리겠다며 엄포를 놨다. 그렇다고 공갈포로 투자가 늘어날까. 국내 고용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나만 살겠다’는 기업이나 엉뚱한 대책으로 헛다리만 짚고 있는 정부를 보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래저래 삼포세대의 암울한 미래가 걱정이다.

 




경향신문 : 201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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