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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천불이 나는 베트남 비자 받기, 그런데 누워 있는 저 사람들은 뭐지?

비나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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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갈 때는 여권과 함께 비자도 발급 받아야 한다.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신분과 국적을 증명하여 상대국에 그 보호를 의뢰하는 여행 승인 증명서가 여권이라면 비자는 외국인에 대한 출입국 허가를 증명하는 일종의 '입국허가증'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157개국과 비자면제협정을 맺어 단기체류일 경우 무비자로 해당 나라에 입국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90일간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고 아시아의 경우에도 일본, 대만, 태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이 90일간 무비자로 머물 수 있다.

무비자로 갈 수 있는 나라가 157개국이나 되다니...놀랍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무비자 체류 기간이 15일이다. 보름 이상 체류를 해야 할 경우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두 달을 계획하고 온 우리는 당연히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호치민 공항에 도착하자 비자를 발급해주는 곳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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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의 하늘은 마치 우리나라 가을 하늘 같습니다. ⓒ 이승숙

여러 번 외국에 나가봤지만 비자를 발급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일정이 길어봐야 열흘 남짓이었으니 비자 받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비자 발급에 관한 사항들을 미리 알아보고 왔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이 일은 장애물경기처럼 어렵기만 하다. 

베트남어를 못 해도 영어만 잘 하면 괜찮을텐데, 우리는 영어도 할 줄 모른다. 그나마 조금 아는 영어 단어조차도 막상 말하려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니, 영어 앞에만 서면 저절로 기가 죽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떼지 못한다. 자신이 없어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다. 

눈치코치로 남들 하는 것 보며 서류를 작성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도대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도통 줄이 줄어들지 않는다. 창구 안에는 사람이 아홉 명이나 있는데 일을 하는 사람은 그중 절반 밖에 되지 않는다. 심지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노닥거리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급증을 내는 우리, 느긋한 그들

조급증을 내는 우리와 달리 키 크고 코 큰 사람들은 느긋하다. 심지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사람들도 있다. 여기가 마치 놀이터이기라도 한 양 그렇게 놀고 있다. 그들은 남의 눈 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자유롭게 논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으면 어떻게 놀던지 그것은 그의 자유다.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는 그렇게 하지를 못 한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쳤던 남편은 더더구나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외국에까지 나왔는데도 여전히 우리는 한국의 규범에 메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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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체류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호치민 공항 비자 발급소.ⓒ 이승숙

"여보, 당신 머리에 자유를 주자. 33년간 당신 머리도 규율에 얽매여 있었는데, 자유를 주자."

퇴직을 한 남편에게 제안했다.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말하고 보니 그럴싸 했다. 단정하고 반듯한 삶을 살고자 했던 남편은 머리 역시 깔끔하게 정리했다. 머리카락이 조금만 자라면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다듬었으니 그의 머리는 늘 깔끔했다. 옷장을 열어보면 튀지않는 중후한 컬러의 옷들이 대부분이다. 늘 바른 길을 걸어가고자 했던 그의 삶의 태도가 옷차림과 행동거지에 묻어났다.

당신 머리에 자유를 주자

남편은 어디에 가도 선생 티가 났다. 옷차림이 그랬고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을 보면 눈길이 부드러워지는 것 역시 그가 선생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좋은 자세이고 올바른 삶의 방식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보이지 않는 틀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자신을 구속하던 틀에서 벗어나 보자. 튀는 색깔의 옷도 입어보고 머리도 길러보자. 그렇게 한다고 그 사람의 근본이 바뀌기야 할까. 원래 선한 사람이니 머리 기른다고 막 살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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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농장 인부를 도와 티끌을 골라내는 남편.ⓒ 이승숙

새로운 길을 걸어보겠다고 나섰건만 여전히 우리는 빨리 빨리를 외치는 한국 사람이다. 서둘러 일을 하지 않는 호치민 공항 직원들을 흉봤고 업무 중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그들의 무개념을 비웃었다. "한국이라면 저렇지 않는데 말야. 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야." 일을 잘 하는 한국 사람들을 추켜세우며 우리 역시 그 일원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여행자 모드로 전환해야 할 텐데...

호치민에서 달랏까지 가는 국내선 비행기표를 끊어놨는데, 이러다가는 비행기를 놓칠 판이다. 세 시간 이상 넉넉하게 뒤로 잡았는데도 여유 시간이 하나도 없게 생겼다.도대체 일을 하는 건지 뭐하는 건지, 비자 발급을 받으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는데도 일의 진척이 없었다. 

가까스로 비자 발급을 받았지만 비행기가 이륙할 시간이 다 됐다. 수하물도 찾아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안 그래도 더운데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호치민 공항은 베트남에서 두 달 살아보려는 우리에게 신고식을 호되게 시켰다. 

산책하듯 느긋하게 여행해 보리라 생각하며 왔는데 우리는 여전히 바쁘다. 비행기 좀 놓치면 뭐 어때? 하는 배포를 가질 수도 있을 텐데 그것 놓치면 죽기라도 하는 양 안달복달이다. 조급증을 내지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여행자의 자세일 텐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멀었다. 여행자 모드로 전환해야 할 텐데 우리는 아직도 정주자(定住者)이다. 

오마이뉴스 :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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