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베트남 며느리 투이, "엄마 밥 먹어시요"
'투이'의 식당 후계자 수업은 현재진행형
지인 소개로 찾아간 안성 일죽면 삼겹살 식당. 식당 이야기를 듣겠거니 하다 만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찾아간 날(지난 13일)이 한국에 들어온 지 딱 한 달, 외국인 등록증을 받은 지는 하루가 지났다. 베트남 며느리 '투이' 씨의 좌충우돌 식당 후계자 수업 이야기다.
어허! 결혼식 세 번 할 판이로세
결혼식을 세 번 한다는 말에 재혼을 떠올리면 오산이다. 한 사람과 세 번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것도 베트남 여성이랑. 사연은 이렇다.
몇 년 전부터 아들 홍인표 씨(38)는 어머니 김화자 씨(60)를 도와 식당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었다. 인표 씨의 나이가 나이니만큼 장가를 가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인표 씨를 도와 식당 후계자가 될 여성이 필요했다.
한국 여성을 소개받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유는 식당 일이 싫다는 것. 인표 씨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 한국 처녀들은 '시' 자가 들어가면 싫어하는 것 같다고. 시골, 시댁, 그리고 '시익당(식당)'이라며. 이 집은 3가지를 다 갖췄다며.
▲ 아들 홍인표 씨, 어머니 김화자 씨, 며느리 투이 씨 등 3명이 활짝 웃고 있다. (사진 제공 송상호)
지인의 소개로 베트남 여성을 찾아 나섰다. 작년 4월에 베트남을 방문했다. 어머니 화자 씨와 함께. 처음 만난 이십대 여성은 집안의 반대로 무산됐다. 두 번째 만난 여성이 '투이(30)' 씨다. 화자 씨는 보자마자 "이 정도면 내 후계자감이다"고 생각했다. 인표 씨는 밝게 웃는 모습이 맘에 들었다고 했다.
관례대로 베트남 현지 결혼식장서 결혼식을 했다. 고맙게도 인표 씨의 처갓집에서 베트남 전통 혼례를 또 치러 줬다. 졸지에 결혼식을 두 번 했다. 할머니까지 살아 계신 대가족의 환대를 받으며 '다 됐구나' 싶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그리 쉽던가. 6개월이면 끝난다던 일이 10개월이 걸릴 줄이야. 덕분에 들어간 비용도 만만찮았다. 오죽하면 화자 씨는 포기하려 했을까. 이때 인표 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저도 저지만, 투이를 생각해서라도 포기할 수 없었어요. 투이는 이미 베트남에서 저와 결혼한 몸인데, 그때 멈췄으면 이혼녀가 되죠. 아직도 전통 풍습이 강한 베트남에서 이혼녀가 된다는 건 수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차마."
인표 씨의 진심이 느껴졌다. 얼마 전 인표 씨는 작은아버지를 위해 선뜻 간 이식을 해 준 따뜻한 사나이였다. 이렇게 해서 그녀와 결혼에 골인했다. 올 여름에 한국에서 또 한 번 결혼식을 치루겠단다. 투이 씨 부모님을 초청해 잘 살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고.
한국 입성한 투이 씨의 요절복통 말실수
오매불망 기다리던 그녀 투이가 한국에 왔다. 인표 씨는 그저 좋았다. 어머니 화자 씨도 오매불망은 마찬가지였을 터.
한국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다. 어머니는 보고야 말았다. 감동스러운 며느리의 모습을. 인표 씨의 다친 발과 발가락을 일일이 씻겨 주는 모습을. 발을 정성스레 소독하며 치료해 주는 모습을. 멀찌감치 지켜보던 화자 씨는 흐뭇함을 넘어 감동스러웠단다.
식당 손님들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야 할 것을 "안녕하시오"라고 인사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침에 밥 차려 놓고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식사하세요"라고 해야 할 것을 "엄마, 밥 먹어시요"라고 해도 괜찮다. 식당 주문 받을 때도 주방을 향해 '이모, 항정살' 해야 할 것을 '임모, 한정살'이라 한들 어떠리.
"울 며느리, 눈썰미가 좋아요. 남이 하는 거 유심히 봐 뒀다가 곧 잘해요. 요즘은 식당 밥 안치는 거 가르치고 있어요. 식당 종업원이 일 생기면 며느리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며칠 전 떡국 하는 것도 가르쳤는데 잘하더라고요."
화자 씨는 낯선 타국에 와서 아들 잘 섬기는 며느리가 그저 고맙다. 식당 일도 곧잘 따라하니 금상첨화다. 들어온 지 한 달밖에 안 됐으니 복잡한 일은 아직 금물이다. 쉬운 일부터 차근차근 전수하고 있다.
화자 씨는 벌써 며느리를 통해 식당 계획을 세웠다. 일죽면에 외국인 근로자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이 꽤나 있다. 그들이 먹을 수 있는 베트남 쌀국수를 출시할 계획이다. 물론 '투이' 씨가 만든 작품으로. 며느리가 한국말을 능숙하게 익히고 나면, 그때는 스탠바이라고 했다.
투이 씨는 모두를 웃게 해
사실 처음엔 어머니 화자 씨로부터 식당 해 오던 이야기를 들었다. 초창기엔 정말 힘들어 하혈까지 했었다는, 병중에 있던 남편과 함께 병원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었다는, 얼마 전 남편도 별세해 미망인이 되었다는, 그렇게 일궈 온 식당이라는 이야기 등.
이런 이야기를 해 오던 화자 씨의 얼굴과 며느리 이야기를 시작하며 지은 얼굴은 확연하게 달랐다.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며느리 이야기를 하면서 "예뻐요"란 말을 10번 이상을 한다. 그동안의 고생은 오간 데 없는 듯했다.
같이 일하는 식당 사람들도 "요즘 삼촌(인표 씨) 얼굴 좋아. 좋은가 벼"라며 농담도 건넨다고. 요즘 이 식당은 투이 씨로 인해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서투른 한국말 때문이고, 예쁜 행동 때문이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다.
뉴스엔조이 :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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