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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호찌민은 진짜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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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9일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다. 바로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인 호찌민이 태어난 날이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선 이날 진심을 담은 다양한 축하 행사가 열린다. 호찌민을 미국과 전쟁을 치렀던 월맹군 괴수 정도로 배웠던 한국인들은 베트남 사람들의 호찌민에 대한 존경과 사랑에 놀라곤 한다. 


인문주의자이자 공산주의 혁명가인 호찌민은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프랑스, 미국과 전쟁을 해 승리했으며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하지만 호찌민이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의 이 같은 업적 때문만은 아니다. 검소함과 청렴함, '호 아저씨'라고 불리는 친근한 이미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는 권력을 잡았을 때도 이를 통해 어떤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다. 평생을 혼자 살며 직접 자동차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를 신었고 지방을 다닐 때면 손수 돼지고기 볶음을 밥에 얹어 도시락을 쌌다고 한다. 또 프랑스 총독관저에서 살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하고 관리인들이 묵는 오두막에 살았다. 가족들도 독립 전쟁에 참여했지만 대통령이 됐을 때 권력과 거리를 두게 해 친인척 비리를 철저히 차단했다.


그가 사망했을 때 남긴 유산은 몇 벌의 옷과 지팡이 타이어로 만든 슬리퍼 등 밖에 없었다. 그는 유언으로도 거창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유해를 방부 처리해 영묘를 만들어 국민 화합의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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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민심서


 흥미로운 것은 호찌민이 평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늘 가지고 다니며 잘 때도 머리맡에 두고 읽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것이다. 호찌민은 한자에 조예가 깊어 많은 한시를 남겼다는 점에서 가능한 얘기다. 옥중에서 그가 남긴 한시를 보면 "엄동설한의 초라함이 없다면 / 따스한 봄날의 찬란함도 결코 없으리 / 불운은 나를 단련시키고 / 내 마음을 더욱 굳세게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호찌민의 유품에 목민심서가 없다며 이는 국내에서 잘못 전해진 얘기라고 주장한다.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근거는 없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통해 청렴한 관리를 세 등급으로 나눌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 가장 최상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먹고 남는 것 역시 가지고 집에 돌아가지 않으며, 벼슬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한 필의 말로 조촐하게 가는 것'이라고 했다. 


호찌민이 진짜 목민심서를 곁에 두고 읽었는지 사실 여부를 떠나 그는 베트남 국민들로부터 정약용이 말한 청렴의 최상 등급에 해당하는 삶을 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정약용이 강조한 청렴한 지도자는 아직 없다.



아시아경제 : 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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